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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일 : 2015-04-28 조회수 : 6962
다음 생에는 건물주로 태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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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게재일 : 2015-04-28 조회수 : 6962
다음 생에는 건물주로 태어나고 싶다

2013년 12월 박대웅씨(가명·31)는 1층, 165㎡ 규모의 문 닫은 카페를 이어받아 파스타 가게로 꾸렸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에서 신촌으로 향하는 큰길에 자리 잡은 파스타 가게는 매장에서 직접 구운 빵과 저렴한 식사 메뉴로 인기를 끌었다. 보증금 1억원, 한 달 임차료는 900만원에 달했지만 권리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박씨는 5000만원을 투자해 인테리어, 전기 배선, 주방 시설 등을 만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라 월세 정도는 무리 없이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막상 개업을 하고 보니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임차료 900만원 외에도 전기·수도·가스비 150만원, 인건비(직원 4명) 800만원, 식자재비 960만원(매출의 30%) 등이 매달 지출되었다. 이에 더해 대출이자, 보험료, 통신비, 쓰레기 처리비에 관리비까지 내야 한다. 총비용이 매달 최소 3200만원에 달했다.

박씨는 하루 100만원 매출을 목표로 한다. 가게를 가까스로 유지할 수 있는 선이다. ‘하루 매출 100만원’이면 많은 돈을 손에 쥐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박씨 자신의 인건비도 제대로 건질 수 없는 액수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주일에 한 번 쉬고 한 달 내내 일해서 가져가는 돈은 직원이 받는 월급의 절반가량이다. 더욱이 그가 파스타 가게를 개업한 지 3개월 만에 건너편 거리에 파스타 가게가 하나 더 생겼다. 주변에 빵집도 하나 들어섰다. 박씨는 “현재로서는 적자만 나지 않아도 성공이라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했다.
 
박씨의 상황은 자영업자 686만여 명의 공통된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자 진입·퇴출 추계와 특징’에 따르면, 2014년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은 26.8%. OECD 회원국 중 1인당 GDP 수준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스페인, 뉴질랜드의 10%에 비해 두 배 이상 많다.

2013년 한 해 동안, 58만명이 자영업으로 진출했다. 이에 비해 자영업에서 퇴출된 경우가 66만명으로 더 많다. 퇴출된 자영업자 중에서는 40대가 29만7000여 명이다. 전체 퇴출자의 45.3%에 달한다. 기획재정부가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규로 창업한 이들의 85%가 2년 안에 폐업한다. 특히 음식점의 폐업률은 95%에 달한다. 자영업 퇴출자 연령과 폐업률 등을 감안하면, 장년에 이른 봉급생활자들이 퇴직금을 쏟아 부어 자영업으로 전환했다가 오래 버티지도 못하고 쫓겨 나오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만난 ‘사장님’과 창업 컨설턴트는 “준비된 창업만이 살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창업에 나서기 전 최소 6개월에서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해 업종을 선정하고, 시장조사, 상권·입지 분석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업종을 고를 때는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스몰비어·치즈등갈비 같은 유행을 따라가다가는 쪽박을 차기 십상이다. 투자비용, 매출, 순수익이 얼마가 될지 미리 계산해보고 수입은 예상보다 10% 낮게, 지출은 10% 높게 보수적으로 계산하면서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음식점이나 카페처럼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자영업은 매장의 위치·규모 등에 따라 상황이 천차만별이다. 특히 인건비와 식료품비는 조정할 수 있지만 공간 비용은 고정이기 때문에 자리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당연히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유리하다. 그러나 번화가일수록 높은 임차료로 커지는 부담을 해당 가게의 수익금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면밀하게 계산해봐야 한다.

‘법’은 멀고 건물주의 횡포는 가깝네

높은 임차료와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금은 ‘자영업자 푸어’를 양산하는 기본 조건이다. 매장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최소 3개월 이상 소요되는데, 꼬박꼬박 내야 하는 임차료는 매출 증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더욱이 요즘처럼 고용이 갈수록 불안정해져 자영업으로 전직하는 임금노동자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는 임차료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아이템으로 창업하더라도 1∼2년 만에 임차료가 오르면, 영세 소상공인은 버티지 못한다. 천정부지로 솟은 임차료 탓에 서울 이대 앞, 신촌, 홍대 앞 등에서 빠져나간 상인들은 삼청동, 가로수길에 이어 합정동, 상수동, 서촌, 경리단길, 연남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최근에는 연희동, 성수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소상공인이 떠난 자리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차지하고, 특색을 잃은 상권은 위기를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2월 서대문구청은 신촌번영회협동조합과 ‘신촌 상권 임대료 안정화 협약’을 맺어 상권 활성화에 발 벗고 나섰다. 건물주는 임대료와 보증금 인상을 유보하고 임차인은 바가지 상술, 호객행위 등 상권 활성화에 저해되는 영업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서울시는 신촌 지역에 ‘도시재생 100억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활력 넘치고 매력적인 신촌 재탄생”을 추진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부르는 게 값’인 권리금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시장에서 인정되는 권리금은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아 문제가 크다. 다음 상가 세입자에게 권리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상가를 철거해버리면 임차인은 권리금을 날릴 수밖에 없다. 특히, 용산참사처럼 도시재개발 때 토지보상법에 따라 상가 세입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범위는 철거, 이전 기간 중 휴업 또는 영업 폐지에 대한 보상뿐이고 대체 매장 조성비용이나 권리금 보전액은 인정되지 않는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권리금을 챙기거나, 건물주가 바뀌면서 본인이 장사하겠다고 막는 경우,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

이에 따라 국회에서는 ‘상가권리금 약탈방지법’이 계류 중이지만 법제화가 늦춰지고 있다. 이 문제에 주목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 등이 연 관련 토론회에서는 건물주의 횡포로 권리금까지 잃고 내쫓긴 임차인들의 발언이 줄을 잇는다. 임차인이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4월21일과 24일 법안심사 소위를 열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점포 거래 업체인 점포라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수도권 소재 평균 권리금은 1억431만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1억2730만원)에 비해 18%가량 하락한 수치다. 김창환 점포라인 대표는 “가계부채 증가와 월세 시장 비중 확대 등으로 소비자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자영업 경기가 어려워졌다. 동일 업종 경쟁 심화, 유행 아이템 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점포 수익률이 악화돼 권리금이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의 파스타 가게 점주 박대웅씨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창업을 권유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절대 권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데다 많은 돈을 투자하고도 가까스로 자신의 인건비만 챙기는 상인이 수두룩하다. 매일 발버둥치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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